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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토론] 포괄임금제 폐지

포괄임금제란 몇 시간을 초과근무하든 상관없이 미리 정한 초과근로수당만 지급하는 것이다. 공짜 야근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포괄임금제를 사실상 폐지하는 수준의 개선 방안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원래 포괄임금제는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일부 직종에 한해 판례로 인정됐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일반 사무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장시간 근무와 과도한 야근을 부추기는 주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기업들은 포괄임금제까지 폐지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과도하게 커지니 충분한 유예기간과 계도기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겁다. ■ 반대 /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기업 절반이 인건비 부담 가중…인력난 심각한 中企엔 이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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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속화로 인해 일자리 생태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일자리 대체 가능성이 높은 사무직, 생산직 등에 대한 대규모 실업과 일자리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일하는 방식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으며, 경직된 근로환경에서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포괄임금제는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관행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10인 이상 기업 중 절반 이상이 포괄임금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영세 기업 4곳 중 1곳이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근로시간 단축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규제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과연 기업들이 감내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 기업 중 89%가 포괄임금제 규제에 따른 영향을 우려하고 있으며 `인건비 부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이 65%로 단연 높게 나타난다. 중소기업은 이미 인력난과 인건비 부담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중소기업 60%가 향후 5년간 인력 수급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중소기업 경영 애로사항 중 `인건비 상승`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포괄임금제를 폐지하면 실질적인 피해가 중소기업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에게 정당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포괄임금제는 사라져야 한다. 하지만 디지털화와 업무 형태 변화에 따라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법체계 정비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근로시간 측정을 규격화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사업주가 휴게시간을 엄격히 계산하고 근무 강도를 높이도록 독려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근로자들이 압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규제는 위법 사항을 적발하기보다 근로시간을 올바르게 지도·관리하는 목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과도한 근로시간으로 인해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대비 70% 수준에 불과하다. 일하는 방식을 혁신해 생산성이 향상된다면 근로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정량적 근로시간보다는 근로자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경영 성과와 장기 목표를 중심으로 포괄임금제 개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포괄임금제 폐지는 기업 상황을 고려해서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의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들도 생산성 향상, 이윤 창출 등 경영 성과를 근로자와 적극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

찬성 /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노동시간 비례한 임금 지급해…장시간 노동 관행서 탈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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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시간노동 국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OECD 회원국 평균인 1763시간보다 300여 시간, 1363시간인 독일에 비해 700여 시간이나 길다. 우리나라 장시간노동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로는 포괄임금제가 지적된다. 법이 아닌 판례에 의해 인정되는 포괄임금제는 야간이나 휴일에 몇 시간을 일했는지 일일이 계산하지 않고 일정 금액을 일당이나 월급으로 `퉁치기`로 합의하는 것을 말한다. 2017년 고용노동부의 기업체노동비용 시범조사에 의하면 상용노동자 10인 이상 기업체 중 포괄임금제를 도입한 곳은 52.8%에 이를 정도로 포괄임금제는 기업현장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포괄임금제는 아무렇지 않게 활용되어서는 결코 안 되는 제도이다. 포괄임금제는 연장·야간·휴일 노동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장시간노동을 고착화시킨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하다. 포괄임금제에서는 연장·야간·휴일수당이 이미 포함돼 지급된 것으로 보아 회사로서는 언제든 마음대로 연장·야간·휴일 노동을 시킬 수 있게 된다. 또한 포괄임금제에서는 노동시간 수에 상관없이 일정 금액만이 지급되기 때문에 노동자로서는 일한 시간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포괄임금제가 `공짜 야근`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법원도 포괄임금제의 이와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법원은 포괄임금제는 노동시간 측정이 어려운 경우에만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에 있다. 법원이 이와 같이 포괄임금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현장에서 포괄임금제가 여전히 무분별하게 활용되고 있다. 2016년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의하면, 노동시간 산정이 어렵지 않은 일반 사무직노동자에게 포괄임금제를 채택하고 있는 기업이 41.3%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포괄임금제는 시간에 대한 노동자의 주권은 최소화하는 반면 사용자의 처분권한은 극대화하는 것을 용인하는 제도이다. 포괄임금제가 우리를 `시간빈곤자(Time Poor)`로 만드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시간에 대한 통제권이 상실된 장시간노동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항상 시간빈곤자일 수밖에 없다.

 

 

 

시간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포괄임금제를 없애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포괄임금제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문제점이 지적되어 왔고, 현재 국회에는 이를 개선하기 위한 법률안이 제출되어 있다. 장시간노동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포괄임금제에 대한 보다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번 국회에서 그 결실이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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