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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 압박→보이스피싱→극단 선택…법원 "업무상 재해"

미수금 해결 위해 돈 빌리던 영업사원
200만원 보이스피싱 당한 후 목숨 끊어
공단 "사기 피해로 자살, 업무관련성 낮아"
法 "압박에 판단력 결여…인과관계 인정"

【서울=뉴시스】김현섭 기자 =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영업사원이 보이스피싱을 당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 업무상 재해로 봐야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에 당한 사기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상 판단력 상실 등이 원인이라면 유족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취지이다.

19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유진현)는 고모씨가 근로복지공단(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지난달 26일 "피고가 원고에게 한 처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고씨의 남편 최모씨는 A음료회사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4년 6월 한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 인근 공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고씨는 공단이 "최씨 사망과 업무 사이의 관련성이 낮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등의 부지급 결정을 내리자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은 "회사 영업형태로 인한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으나 업무상 만성적 스트레스나 급격한 업무환경의 변화가 확인되지 않고, 금전적 손실이나 보이스피싱 사기 피해 등으로 경제적 압박이 심해져 자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씨는 사망한 채 발견되기 4일 전 200만원의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최씨가 회사에 입금해야 하는 거래처 미수금을 해결하기 위해 사비를 동원하거나 대부업체, 동료들에게 돈을 빌리는 등 업무 관련 압박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에 대해 고씨는 "남편이 당한 사기는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고, 법원도 고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업무와 재해 사이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돼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증명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업무로 유발·악화된 질병으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 행위선택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결여되거나 현저히 저하돼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서 근로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추단할 수 있을 때에는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afero@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