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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법정관리 직행땐 해고규모 2배… 기촉법 일몰, 고용대란 키운다

[동아일보]
워크아웃-법정관리 66곳 실태 보니
전남 광양에 있는 설비 수리업체 A사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직원이 40명이었지만 7개월간 직원 절반을 내보냈다. 고객사인 대기업이 경영난으로 설비투자를 줄이며 수리할 일감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대표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이 없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에 들어가기도 어렵고 일감도 없어 사람을 내보내며 버틸 수밖에 없다”며 “경영 타격이 큰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택하느니 차라리 문을 닫겠다”고 말했다.

한시법인 기촉법이 6월 말 일몰되는 바람에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은행들의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인력을 줄이며 허덕이고 있다. 기업들은 “부도 위기에 처하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인력 감축”이라고 말한다. 대기업의 2, 3차 협력사들과 엮여 있는 중소기업들이 도산하면 ‘고용대란’이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 고용대란 키우는 기촉법 일몰

22일 금융 당국이 2009∼2017년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 66곳의 구조조정 1년 차와 4년 차의 고용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구조조정 기간 인력 감소 폭은 워크아웃 기업이 평균 16% 수준인 반면 법정관리 기업은 32%에 이르렀다. 법정관리로 직행한 기업의 ‘고용대란’ 파장이 워크아웃 기업의 갑절에 이르는 셈이다.

워크아웃 기업은 구조조정이 막바지에 이르면 인원에 큰 변화가 없는 반면 법정관리 기업은 지속적으로 인원이 줄어드는 모습이었다. 실제 구조조정 4년 차 무렵 직전 연도 인원과 비교한 인력감소율은 워크아웃 기업의 경우 1.4%에 불과한 데 비해 법정관리 기업은 10.3%에 이르렀다. 결국 워크아웃의 근거가 되는 기촉법이 사라지면 기업들이 워크아웃을 거치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직행해 고용대란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당국은 보고 있다.

기촉법은 금융 채권단 75%만 찬성해도 워크아웃을 개시할 수 있다. 기업이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구조조정 등 자구책을 실천하면 채무가 동결돼 한숨을 돌릴 수 있다. 이 법이 없어진 지난달부터 기업들은 기촉법 내용이 일부 반영된 ‘기업구조조정 운영협약’을 맺고 채권단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협약은 협약에 가입된 금융회사에만 효력이 있고 법적 구속력이 없어 워크아웃이 쉽게 시작되기 힘들다. 기업들은 구조조정의 또 다른 방법으로 통합도산법에 따라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 있지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문제다.

○ “워크아웃 덕에 직원 해고 면해”

종전까지 기업들은 기촉법으로 워크아웃에 돌입한 덕분에 대량 해고 사태를 피해왔다. 전북 전주의 원전 부품 제조업체 B사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 탓에 매출이 줄어 80억 원가량의 빚을 못 갚고 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경영진은 올 들어 직원 60명 중 25명을 내보내다 결국 4월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이 회사 대표는 “법정관리로 직행했으면 지금 유지하고 있는 대기업 공급처가 끊기고 협력사에 소문이 쫙 퍼져 직원들을 계속 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 김포의 건설장비 제조업체 C사 관계자는 “4월 말에 워크아웃을 신청한 덕에 원리금 상환이 2년 늦춰져 직원 해고를 막을 수 있었다”며 “위기를 넘기니 직원들이 희망을 갖고 일에 몰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워크아웃이 고용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게 사실”이라고 전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2일 ‘기촉법 재입법에 대한 경제계 건의문’을 22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건의서에서 “중견·중소기업에 가장 효과적인 구조조정제도는 워크아웃”이라며 기촉법을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기촉법 부활 미적거리는 국회

국회에서는 야당이 지난달 말 기촉법안을 발의했고 여당은 이달 초 같은 취지의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이달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이 통과될지는 불투명하다. 일부 의원이 “기촉법은 관치금융”이라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기촉법으로 채무가 동결되면 채권자의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지적도 있다.

기촉법을 상시법으로 둘지, 예전처럼 한시법으로 둘지도 쟁점이다. 야당에서 발의한 법안은 기촉법을 상시법으로 제정하는 내용이다. 기촉법이 일몰될 때마다 ‘벼랑 끝’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반면 여당은 “기촉법 재입법이 필요하긴 하지만 앞으로 보완할 점이 많으니 한시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안이 이달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채권단 지원을 기다리는 한계기업들의 고충이 더욱 커질 것이란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한계기업을 다 살려둘 수는 없지만 고용대란이 심각한 만큼 구조조정 연착륙을 위한 제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조은아 achim@donga.com·이건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