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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일하다 5분씩 쪼개 알아서 쉬라니… 더 서글픈 돌봄전담사

휴게시간 의무화 ‘그림의 떡’ /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 …수업준비에 외부강사 보조까지 / 1∼2시간 초과근무는 비일비재…교육청 탁상 행정에 ‘한숨’ / “두 반 합쳐 교차근무” 황당 지시… “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지나” / 전일제 전담사 18% 불과…전문가 “인력 충원·처우 개선을 / 시·도 표준업무안 마련도 시급”
#1. “선생님, 화장실에 가고 싶어요.” “선생님, 여기에다가 색칠하면 되는 거예요?” 수도권 한 유치원에서 방과후과정전담사로 활동하는 이모씨는 업무시간을 정신없이 보낸다. 근로계약서에는 낮 12시부터 30분간 ‘휴게시간’이 명시돼 있지만 쉴 수 없는 ‘명목상 휴게시간’이다. 이씨가 담당하는 아이 28명은 대부분 만 4∼5세 어린아이라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아이들 급식을 돕고 혼자 화장실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 용변을 신경 쓰다 보면 어느새 오후 1시가 훌쩍 넘는다.

#2. 인천 한 초등학교에서 돌봄전담사로 5년째 일하는 최모씨는 낮 12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하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실제 근무상황과 크게 차이 난다. 간식 검수와 준비, 학습 준비를 위해 매일 30분∼1시간 일찍 출근한다. 방학 중에는 돌봄교실이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된다. 일부 부모는 출근시간을 맞추려고 오전 8시30분쯤 아이를 돌봄교실에 맡기기에 그 시간에 맞춰 출근할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사정상 아이를 늦게 데려갈 때는 오후 7시까지 남은 아이들을 돌본다.

‘휴식있는 삶’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달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초등학교 돌봄전담사나 유치원 방과후전담사 등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경우 휴게시간 보장을 위해 정부가 보조교사를 약 6000명 채용키로 했지만 보육노동자와 관련 단체 등에서 요구하는 충원인력의 10분의 1 수준이다. 문재인정부 국정과제로 내세운 ‘온종일 돌봄체계 구축’이 양적 확대에만 치우치지 않으려면 이들의 처우개선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쉴 수 없는데 어떻게 쉬라는 건지”

초등돌봄전담사와 유치원방과후전담사는 시·도 교육청 산하 각급 교육기관에서 교육실무를 담당하는 무기계약직, 기간제 계약직이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4시간 이상 근무 시 30분)을 부여받지만 과중한 업무 탓에 전혀 쉴 수 없다. 낮에 출근하자마자 학습준비와 비품정리, 간식 제공까지 끝내면 오후 2시가 훌쩍 넘는다. 전담사가 아이들의 생활전반을 담당하다 보니 학부모들의 상담신청이나 스케줄변경 연락이 오면 즉각 응대해야 한다.

특기적성 시간에 외부강사가 수업을 진행할 때도 수업 보조를 담당하느라 쉴 틈이 없을 때가 많다. 인천의 한 돌봄전담사는 “특기적성 선생님들도 혼자서 20명이 넘는 아이들 통제가 어렵다 보니 ‘수업 시간에 함께 앉아 있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돌봄전담사의 행정업무도 만만치 않다. 교육부에서 내려오는 공문처리부터 활동계획, 외부강사 채용 문제까지 처리해야 한다. 최근에는 교육부에서 돌봄교실에 ‘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권장하면서 돌봄교실 입실·퇴실 출결상황과 간식, 아이들 일정 기록까지 하지 않았던 업무까지 가중됐다. 입실·퇴실 출결상황과 간식, 아이들 일정 기록까지 하지 않았던 업무까지 가중됐다. 
◆무리하게 두 반을 합쳐 운영하기도

교육당국은 전담사들에게 불가능한 휴게시간을 강제하기 일쑤다. 출근 10분 후, 퇴근 직전 30분, 외부강사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사용할 것을 권고한다. 심지어 “5분씩 쪼개서 알아서 쉬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54조에 따르면 ‘반드시’ 근로시간 도중에 실질적인 휴게시간이 제공돼야 하며 형식적으로 휴게시간만 정해두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위법이다.

단체협약 등 노사 합의로 휴게시간만큼 조기퇴근하거나 휴게시간에 수당을 제공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상 노사 합의로 휴게시간을 제공하지 않을 경우 법을 위반한 것으로 해석된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휴게시간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을 때 노사 간 사전 합의가 있을 경우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논의 중이나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교육청에서는 두 반을 한 반으로 합친 뒤 교차근무를 맡기는 식으로 휴게시간을 확보하라고 지시한다. 이 경우 돌봄전담사 1명이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돌보게 돼 안전사고 발생과 책임소재 문제가 우려된다.

한 초등학교 돌봄전담사는 “학생 한 명이 돌봄교실에 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아 온 학교를 뒤지며 찾아다녔는데 결국 친구집에 잠깐 놀러갔던 거였다”며 “그때처럼 불가피하게 교실을 비워야 하는 경우 돌봄교실에서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걱정될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통일된 표준업무안 필요”

전문가들은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기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휴게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력 산정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업무별 특성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근로감독관이 해당 근로자들로부터 민원을 받거나 제소, 고발을 받을 경우 해당 사업장을 조사하고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시정되도록 강력히 조치해야 한다”며 “왜 휴게시간이 안 지켜지는지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필요하면 인력도 충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초등돌봄 전담사들은 현재 18%에 불과한 ‘전일제 전담사’를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의 초등돌봄 전담사는 8시간 근무하는 전일제 전담사부터 3시간 이하의 초단시간 전담사까지 다양하다. 조선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전담사가 한 교실을 제대로 책임지기 위해서는 전일제 교사 비중이 늘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과도한 업무를 막기 위해 시·도교육청별 ‘업무표준안’ 제정도 거론된다. 전담사들은 현재 17개 시·도 교육청의 교육감이 개별 고용하는 형태여서 고용형태가 제각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지역별로 전담사들의 처우가 차등되지 않도록 각 시·도 돌봄교실 담당자와 처우개선 방안을 찾고 있다”며 “주 20시간, 30시간, 40시간별로 전담사가 해야 할 일 등 전국적 표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