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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 1023일의 농성에 '마침표'…"끝까지 지켜볼 것"

"생명안전 기본권에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어"25일 오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열린 '11년의 싸움, 1023일의 농성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농성 마침 문화제'에서 문화제 참석자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2018.7.25/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서울=뉴스1) 윤다정 기자 = "우리는 지켜볼 것이다. '제대로 된 사과, 배제 없는 보상, 재발 방지 대책'의 정당한 요구가 실현되는 것을. 그리고 계속 나아갈 것이다. 죽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하는 세상을 위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은 25일 오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11년의 싸움, 1023일의 농성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농성 마침 문화제'를 열었다.

1023일간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을 지켜온 약 13㎡ 크기의 농성장이 철거된 자리는 그간 반올림의 투쟁에 연대해온 사람들이 대신 메웠다. 농성장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기분이 이상해"라고 말하는 참석자들의 표정에서 약간의 아쉬움과 진한 홀가분함이 묻어났다.

삼성전자와 중재에 합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서 딸을 그리며 끝내 눈물을 보였던, 삼성 백혈병 피해자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반올림 대표는 환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았다.

황 대표는 중재 합의서 서명과 농성장 해산에 이르기까지 반올림과 함께한 이들의 이름을 정성스레 언급한 뒤,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를 비롯해 반올림 활동가들과 함께 참석자들에게 큰절을 올렸다.

김시녀씨는 "마침내 농성장을 접었다"며 운을 떼고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김씨는 "농성장을 접기가 이렇게 힘들었을까. 이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25일 오후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서 열린 '11년의 싸움, 1023일의 농성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농성 마침 문화제'에서 삼성 직업병 피해자 한혜경씨(오른쪽)가 발언하고 있다. 2018.7.25/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앞서 지난 24일 반올림과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근로자들의 피해 보상을 위한 중재 합의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조정위가 제시하는 중재안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중재 방식에 합의했다.

조정위원회가 마련할 최종 중재안에는 Δ새로운 질병지원보상안 Δ반올림 피해자 보상 Δ삼성전자 측의 사과 Δ반올림의 농성 해제 Δ재발방지 및 사회공헌 실행 등이 담길 예정이다.

교섭단 실무를 담당해온 공유정옥 간사는 이번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며 "많은 분들이 어떻게든 삼성을 대화의 자리에 나오게 하려고 노력했고, 거의 다 된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안 된다는 걸 확인할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소회를 밝혔다.

공유정옥 간사는 "1차 조정권고안을 봤고, 이후 지난한 과정 속에서 문제를 어떻게 풀지, 어떻게 하면 피해자들이 덜 고통받을지를 물었던 조정위를 믿는다"며 "중재안이 나오면 이행될 수 있도록 연대의 힘을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상진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삼성 반도체 피해자들과 반올림의 11년간의 투쟁을 "화학물질의 독성은 없는 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라는, 노동자가 직업병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반증하지 않으면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획기적 전환점"이라고 정리했다.

이 부위원장은 "이 투쟁은 한국 사회의 기업 이윤과 노동자의 생명·안전 중 어떤 가치가 우선돼야 하냐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한다"며 "생명안전이라는 노동자·시민의 기본권에 어떤 것도 우선할 수 없다는 중요한 싸움을 우리는 하고 있다"고 격려했다.

25일 오후 '11년의 싸움, 1023일의 농성을 기억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농성 마침 문화제'가 열린 서울 강남역 8번 출구 앞에 삼성 직업병 피해자 고(故) 황유미씨의 영정이 놓여 있다. 2018.7.25/뉴스1 © News1 윤다정 기자

maum@news1.kr